2012년 2월 3일 금요일

자식은 난초 물 주듯 보살펴야 잘 자란다.


이정숙의 자녀 교육 통신 1편 


자식은 난초 물 주듯 보살펴야 잘 자란다.


“ 왜 너는 어린 자식을 가만 놔두지 못하고 그렇게 자꾸만 괴롭히느냐? 네가 자식들에게 하는 그런 짓은 새싹보고 빨리 안 자란다며 무식하게 손으로 휙 잡아 올려 땅 속 깊이 뿌리 내리지 못하게 해서 조기에 말라 버리게 하는 짓과 같다. ”



항상 냉정한 아버지가 야속했다.


우리 아이들이 막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다. 친정아버지께서 내가 아이들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여러 잔소리를 늘어놓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당시에는 마음속으로 “절대 아버지처럼 냉정한 부모는 되기 싫어서 그래요.“라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우리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매우 냉정한 분이셨다. 넘어지고 깨져도 일으켜 세우주지 못하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모두 아버지는 정말로 자식에게 냉정한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부모가 되고 보니 부모가 자기 자식을 냉정하게 대하는 것이 훨씬 어려웠다.
부모란 본능적으로 자식 사랑이 넘친다. 자식이 다치거나 화를 당하거나 잘못 될까 봐 지나치게 노심초사한다. 남들보다 머리가 나빠질까? 학습 능력이 뒤질까? 발육 속도나 느릴까? 안 해도 될 걱정으로 가득하다.

게다가 부모는 자식을 보호하려는 애정만 갖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들을 자식을 통해 이루고 싶은 대리 만족 욕망도 갖는다. 학창 시절 뒤쳐진 성적으로 구겨졌던 자존심을 대신 펴 줄 유일한 사람이 자식이라고 믿는 것이다.

자식을 다 길러 놓고 보니 어렵게 구한 직장마저 그만두고 자식 뒷바라지에 올인 했던 엄마도, 자식의 유치원, 학교 스케줄 등을 한눈에 꿰며 관리를 잘해 온 프로급 엄마도 노력만큼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의 지나친 자식 사랑은 동물적 본능의 발로일 뿐임을 깨달았다. 자식과 적당한 간격을 두고 자식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지켜보다가 결정적인 위험이나 분명한 궤도 이탈 순간에만 관여할 줄 아는 부모들이 훨씬 더 자식을 잘 키워낸다는 것도 깨달았다.

부모는 자식이 못마땅해도 나서지 말고 지켜볼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자식을 적극 관리하지 말고 지켜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만 관여하라고 입이 닳도록 이르시던 친정아버지의 견해를 반은 받아들이고 반은 흘렸다. 그 반만의 실천으로도 자식을 남들보다 훨씬 쉽게 키우고 남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더 나은 결과를 얻었다. 가급적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그어 놓고 그 선만 넘지 않으면 본인들이 알아서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했다. 그 한 결과 두 아들 모두 스스로 공부해 한 명은 명문대와 대학원을 수석 졸업했고 한 명은 7개 국어를 할 줄 아는 인재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에게 “ 자식은 난에 물을 주듯 최소한의 관여만 해야 잘 자랍니다.” 라고 말하고 싶다. 난초는 물을 너무 자주 주면 잘 자라지 못한다. 자식도 부모가 집적댈수록 자기 역량을 다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 


아이는 난을 기르듯 자주 물 주지 말고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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